애정만세 : 시끄러운 침묵 속에서 사랑하기
영화 · 문화
월요일 회사를 마치고 여의도 CGV로 향했다. 리모델링 이후 처음 가는 여의도 CGV이다. 어둡고 골방 느낌의 예전 모습은 사라지고 아주 밝고 산뜻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영화관보다는 새롭게 문을 연 식당 느낌이랄까. 나쁘진 않았지만, 예전 모습이 더 골방다워서 문득 그리워질 듯했다.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 스냅백을 뒤로 돌려쓰고 박시한 옷을 입은 어떤 분과 눈이 마주쳤다. 2~3초간 서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상영관의 위치가 바뀌거나 하진 않았다. 여전히 아트하우스는 맨 안쪽의 공간. 그 앞의 대기 공간에서 앉아 있으면서 입장이 가능해지길 기다렸다. 내 옆에는 모녀로 보이는 분들도 계셨다. 두 분 모두 나이를 지긋이 잡수셨는데도 불구하고 서로를 아끼는 그 감정이 느껴졌다. ‘입장 가능’으로 전광판이 바뀌고, 영화관에 입장해 자리에 앉았다.
애정만세(愛情萬歲)는 대만의 차이밍량 감독의 1994년 작품이다. 제51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비포 더 레인’과 공동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장은 데이비드 린치. 경쟁 부문에 오른 다른 작품들 가운데에는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도 있고,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데뷔작 ‘리틀 오데사’, 피터 잭슨 감독의 ‘천사의 피조물’도 있다. 물론 지금 적어둔 작품 모두 들어보기만 했지, 보질 못했다.
대만을 좋아하지만, 여행도 작년이 되어서야 처음 다녀왔고, 대만 영화 이야기도 많이 들어왔지만, 이번이 처음이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을 봐야지, 봐야지 했는데 여전히 보질 못했고,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비정성시’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에 본 애정만세로 첫 대만 영화 스타트를 끊은 셈이다.
영화의 시선은 다른 영화들과 많이 달랐다. 카메라가 적극적으로 인물을 향해 다가간다는 인상보다는 멀리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긴 호흡의 롱테이크로 인물들을 담다 보니 어느 때엔 마치 사진 전시를 보고 있는 인상도 받았다. 그저 참을성 있게 바라보고만 있는다. 손목을 그어 세상을 떠나려는 인물도, 공원에서 한없이 울고 있는 인물도.
침묵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영화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는 조용하지 않다. 오히려 영화는 문득문득 사운드가 튄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시끄럽다. 도시를 가득 채운 차들의 소리, 회사원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목소리, 화장실의 빈 욕조를 채우는 물소리는 웅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로움이 채워지진 않는다. 90년대 도시의 모습을 담았지만 여전히 유효한 도시의 ‘시끄러운 침묵’이다.

애정만세라는 제목처럼 영화는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나의 공간에 서로 다른 열쇠를 가진 세 사람의 이야기다. 다만 그렇다고 낭만적이거나 너무 사랑스러워서 ‘만세’를 부를만한 상황이 펼쳐지지는 않는다. 대신 이 사랑에는 고독과 우울이 가득하다.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할 수 없어 과일과 스킨십을 하거나 상대방이 잠이 든 사이에 몰래 시도하는 존재도 있고, 자신의 사랑 사전에는 ‘원나잇’ 밖에 없는 듯, 하룻밤 섹스로 사랑을 이어오는 존재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갈증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영화가 끝이 나도 하염없이 눈물과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은 1990년대나 지금이나 현대인에게는 필수가 된 걸까. 어쩌면 인간에게는 태생적인 외로움이 있을지 모른다. 시끄러운 침묵이 가득한 도시가 그 외로움을 증폭하는 장치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증폭기가 있다면 감쇠기도 있을 터. 그 감쇠기는 아마 우리들의 체온 아닐까.
영화 시작과 끝에 나오는 스텝롤 폰트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무언가 날카로운 무언가에 긁힌 듯한 모습을 하면서도 또 마냥 날카롭지만은 않고 그 속이 채워져 있는, 어쩐지 포근한 폰트였다. 누군가의 손 글씨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