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텍사스 :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영화 · 빔 벤더스
1. 파리, 텍사스
어떠한 정보도 없는 상태였다. 그저 빔 벤더스 감독의 대표작이라는 정도? 찾아보니 많은 예술가들이 찬사를 보낸 작품이었다. 짐 자무쉬가 칸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고 감사 편지를 보낼 정도라니,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커트 코베인이 생전 가장 좋아한 영화라는데,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영화는 황량한 사막을 무작정 걷고 있는 남성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목적지도 없이, 또 아무런 말도 없이 무작정 걸어 나간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다 목이 마른 남성은 물을 찾기 위해 어느 술집에 도착한다. 하지만 이내 탈진해 쓰러지는 남성. 그의 이름은 트래비스다.
쓰러진 트래비스의 소지품에서 연락처를 발견한 의사는 바로 연락을 취하고, 그렇게 연락이 닿은 사람은 트래비스의 동생 월트다. 갑자기 증발해 버린 형을 4년 만에 만나게 된 월트. 기억도 잃고 말조차 잊은 트래비스는 동생 월트의 도움으로 조금씩 과거의 기억과 삶을 되찾아간다. 4년 만에 아들 헌터와도 재회하게 되고.
자신의 인생 절반 가까이를 아빠 없이 지낸 헌터 입장에서는 쉽사리 트래비스와의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트래비스의 노력으로 서먹했던 부자는 다시금 가까워지고, 둘은 4년 전 사라진 아내 제인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2. 기타와 빛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기타 소리다. 음악 감독은 라이 쿠더. 1960~70년대 세션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날린 분이라고 한다. 롤링 스톤스의 ‘Sister Morphine’의 슬라이드 기타도 라이 쿠더의 연주라고.
멜로디가 두드러지는 드라마틱한 음악은 아니다. 인물의 감정선을 방해하지 않고, 영화의 속도를 거스르지 않는 미니멀한 음악에 가깝다. 라이 쿠더의 기타는 영화보다 먼저 앞서가지 않는다. 그저 한 음을 튕기고 그 음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인상이 들 정도로 오랫동안 남아있다. 마치 텅 빈 공간에서 음악이 연주되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이 영화의 색과 트래비스의 감정과 닮아 있다.
유독 빛이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많다. 사막의 황량한 모습과 푸르른 하늘이 담담히 담겨 있는 장면. 사막의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햇빛 아래 잠든 부자. 어두운 모텔로 들어가는 트래비스 등. 그냥 자연에서 내 두 눈으로 바라본 장면을 그대로 옮긴 듯 하다. 조명 없이 촬영했나 싶을 정도로. 당연히 수많은 조명들을 활용해 찍었을 텐데, 어떻게 이런 자연 그대로의 느낌을 주는 화면이 나왔을까 싶어 놀라웠다.
3.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보면서 엄청 울었던 장면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길을 나란히 걸어가며 대화하는 장면이었는데, 영화관에서 너무 울어서 주변 분들에게 죄송했던 기억이 있다. 그 장면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 ‘파리, 텍사스’에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대화가 끼어들지 않는다. 그저 둘은 조금 거리를 두고 걸어가기만 한다. 그 장면에서 왜인지 마음이 흔들렸다. 내 아버지를 향한 감정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방향이었을까.
마주 보고 대화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마음이 있다. 트래비스와 헌터, 두 부자 사이의 마음처럼. 4년 만에 만난 헌터는 아빠 트래비스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헌터 : 나는 아빠가 죽은 것 같다는 느낌은 단 한 번도 들지 않았어요. 아빠가 어딘가에서 돌아다니면서 이야기하는 게 느껴졌거든요.
트래비스 : 아, 그래.
헌터 : 엄마도 느껴져요.
눈을 마주치지 않더라도, 또 보이지 않더라고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되는 마음이 있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일 수 있으니까.
사랑하는 모든 순간이 모험이었고 서로를 무척이나 아꼈던 트래비스와 제인. 마지막에 둘은 결국 같은 공간에 있게 되지만 서로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오직 목소리로만 대화를 이어 나갈 뿐이다. 둘 사이를 가로막는 유리창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느낄 수 있다. 전화기와 스피커를 통해 서로의 고백을 듣고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이 유리창이 엄청난 벽이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의지만 있다면 그 벽은 손쉽게 깨질 수 있다. 혹은 조명만 조절해도 언제든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결국 아무런 벽 없이 서로를 마주하지는 않는다. 트래비스는 제인을 여전히 사랑하지만 제인과 헌터만 이어줄 뿐이다. 트래비스는 제인이 헌터와 재회하는 모습을 저 멀리서 바라본 뒤 다시 또 어딘가로 떠난다. 트래비스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4. 다시 파리, 텍사스
트래비스 : 여기는 아니야… 이런 데는 근사한 여자를 데려올 만한 곳이 아니야. 그렇지? 네가 근사한 여자가 있다면, 이런 데로 데려오겠어?
헌터 : ‘근사한 여자’가 뭐예요?
트래비스 : 우리 엄마… 우리 엄마 말이야. 네 엄마 말고. 우리 엄마는 그런 근사한 여자가 아니었어. 한 번도 그런 적 없었고, 그렇게 되고 싶어 하지도 않았어. 자기가 그런 여자인 척한 적도 없었어.
헌터 : 그럼 어떤 사람이었는데요?
트래비스 : 엄마는 그냥… 평범했어. 그냥 평범하고 좋은 여자였어.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 아주 평범했고, 아주 좋은 사람이었지.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말이야. 우리 아버지 머릿속에는 병처럼 달라붙은 생각이 하나 있었어.
헌터 : 무슨 생각이요?
트래비스 : 엄마에 대한 어떤 생각이 있었어. 엄마를 보고 있으면서도, 엄마를 보는 게 아니었어. 자기 머릿속에 있는 그 생각을 보고 있었던 거야. 아버지는 알고 있었거든. 자기가 길바닥의 흙먼지만큼이나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자기는 평생 펑범한 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걸. 그래서 엄마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 거야. (웃음) 사람들한테 엄마가 파리 출신이라고 말하고 다녔어. 그러다 자기도 그걸 믿기 시작했지. 정말로 믿어버렸어. 그러니까 엄마는, 너무 창피해했고… 우리 엄마는 원래 굉장히 수줍은 사람이었거든…
트래비스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텅 빈 세탁소 안으로 들어온다. 헌터가 그를 부축하고 있다. 사실 세탁소라기보다는 헛간에 가까운 곳이다.
트래비스가 시작된 곳, 그리고 트래비스의 어머니가 태어난 파리는 프랑스의 파리가 아니다. 미국 텍사스에 있는 파리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내의 고향을 파리라고 이야기하며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는 뒤늦게 ’파리, 텍사스’라고 정정한다. 트래비스는 어쩌면 자신의 아버지가 텍사스의 파리가 아닌 프랑스 파리 출신의 아내를 원한 건 아닐까 하고 아들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머니에게 엄청난 부담과 멍에가 되었을 거라고도.
상대방의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지 못하고, 내가 사랑하는 모습이 되길 바랐던 트래비스의 아버지. 트래비스는 그 모습을 미워했지만, 자신도 사랑하는 제인에게 같은 행동을 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트래비스는 자기 자신을 버렸고, 목적 없이 사막을 떠돌았다.
중요한 건 ‘나 자신’ 그대로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지만 트래비스는 그러지 못했다. 4년 만에 재회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유리벽을 두고 제인을 만난 트래비스는 다시 또 닦달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질투하고 의심한다. 누군가는 질투를 사랑의 언어로도 보겠지만, 트래비스는 다시금 또 제인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서 아버지를 보게 된 건 아닐까. 그 아버지 때문에 힘들게 살아간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이 제인과 겹쳐보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트래비스는 다시 떠난 것이 아닐까.
5. 상실의 시대
20대 초반에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만약 내가 먼 훗날 감정이 더 깊어진 뒤에 이 책을 읽는다면 과연 어떻게 다르게 읽힐까 하고.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문득 ’상실의 시대’를 생각했던 그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