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책이라면 팔 만큼 : 작품을 대하는 마음

만화 · 책

어릴 적 살던 동네에는 유명한 헌책방이 있었다. 이름은 ‘고구마’. 규모가 꽤 커서 방송에도 몇 번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또래에 비해서는 책에 관심이 있는 편이라서 그 ‘고구마’ 헌책방에 몇 번 가봤다. 어린 마음에 책에서 흔히 묘사되던 헌책방의 모습을 기대했던 건 당연했다. 이를테면 예상치 못한 보물을 발견하거나, 나이 지긋한 주인아저씨가 책 한 권을 추천해주는 그런 모습 말이다.

그때의 기억이 긍정적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긴 어려울 듯하다. 왜냐하면 내게 그 헌책방은 책방이나 서점이라기보다는 창고에 가까운 공간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 아끼며 읽었던 책 가운데 상태 좋은 것들을 고르고 골라 매입해 매대에 정렬해둔 곳이라기 보다는,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오래된 책들이 가득 쌓여 있는 공간처럼 보였다.

어렸을 적 청계천을 따라 있던 시장, 복원 공사 전에 있었던 그곳의 헌책방도 마찬가지다. 전국의 유명한 헌책방거리를 다녀와도 비슷했다. 그 유명하다는 부산의 보수동 책방골목에서의 인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이건 온전히 나만의 인상이다. 만약 책에 대한 애정이 훨씬 더 컸다면, 보물을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이 있었다면 다른 인상을 받았겠지. 그래서인지 조금 더 나이를 먹어 찾게 된 ‘알라딘 중고서점’은 내가 상상했던 헌책방의 이미지와 꼭 맞았다. 대학생 시절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틈만 나면 들르곤 했다. 나이 많은 주인 아저씨 대신 많은 아르바이트생이 있었지만, 잘 정리된 매대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맛이 있었으니까.

‘책이라면 팔 만큼’은 코지마 아오의 만화다. 묶은 머리를 하고 때로는 냉정한 표정을 짓기도 하는 요상한 분위기의 청년이 운영하는 헌책방 시월당(十月堂)이 주인공이다. 그곳을 오가는 손님들과, 그들이 함께 들고오는 책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본에는 3권까지 나왔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1권만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펴자마자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코지마 아오는 정말 책을 사랑하는구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현대와 고전을 넘나들며 다양한 책을 읽어온 작가구나 싶었다.

책을 만든 사람을 존경하고, 책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삶이 만화책에 담겨 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만 등장하지도 않는다. 매일매일 헌책방에 들러 ‘100엔 코너’의 책을 사가던 어떤 대학생. 요즘 애들답지 않게 중고 서적을 꾸준히 사가는 모습이 대견했던 헌책방 주인은 대학생이 준비한다던 졸업 전시를 몰래 찾아간다. 그곳에서 발견한 졸업 작품은 다름 아닌 헌책들을 찢어 만든 전시물. 그곳에서 대학생은 친구들에게 헌책방 주인이 공짜로 몇 권 더 줬다며 제작비를 아낄 수 있었다고 자랑까지 하고 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혼이 담겨 있던 책이 그렇게 훼손되는 걸 견디지 못할 것이다. 헌책방에 책을 처분하는 것조차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책뿐만이 아니다. 누군가가 시간과 열정을 들여 만든 ‘무언가’라면 그 자체로 얼마간의 가치를 품고 있을 터. 하지만 과연 나는 그 ‘무언가’를 제대로 대하고 있었던 걸까? 자문해보면 선뜻 좋은 대답을 하긴 어려워 보인다.

나조차도 매주 수십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그 ‘무언가’가 사람들에게 널리 널리 닿기를 바라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길 바라고 있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행위에는 분명 숭고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일을 두고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 머쓱해 때로는 그 가치를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때로는 누군가가 힘들게 만들어온 ‘무언가’를 너무 쉽게 평가하고, 함부로 표현했던 적도 있었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문득, 혹은 불쑥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면 다시금 이 책, ‘책이라면 팔 만큼’을 펴볼 것이다. 빨리 2권과 3권도 발매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