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편지는 언제나 수신인에게 도착한다

에드거 앨런 포 · 자크 라캉

라캉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편지는 언제나 수신인에게 도착한다”

영화 평론가 라이너가 리뷰한 ‘안원잘부 제나 경주편’ 에피소드에서 등장한 문장이다. 영상의 흐름상 저 문장은 ‘마음을 담아 쓴 편지는 언젠가는 그 사람에게 전해진다’라고 읽힌다. 라캉은 왜 저런 이야기를 한 걸까? 또 라캉이 정확히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뭐였을까? 싶어서 급하게 찾아봤다.

원문은 이렇다.

‘도둑맞은 편지’, 아니 ‘배달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편지’가 의미하는 바는, 편지는 언제나 그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라캉이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소설 《도둑맞은 편지》를 분석한 글인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의 마지막에 나온다.

《도둑맞은 편지》는 이런 이야기다. 왕비가 받은 비밀 편지가 있다. 편지에 적힌 내용이 공개되면 왕비는 정치적으로 위험해질 수 있다. 왕비는 조심스레 비밀 편지를 읽고 있는데 갑자기 왕과 장관이 들이닥친다. 혹여나 급하게 편지를 감추면, 이 편지가 수상하다는 사실이 들킬까 봐 왕비는 별것 아닌 척 책상 위에 놓아 두었다. 장관은 왕비가 편지를 감추려 한다는 사실과 왕이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을 동시에 간파한다. 그는 자신의 편지를 옆에 내려놓은 뒤 대화를 이어가다가, 떠나면서 왕비의 편지를 태연하게 집어 든다. 왕비는 그 장면을 지켜보고도 왕에게 비밀이 드러날까 봐 장관을 제지하지 못한다.

장관은 이 편지를 이용해 왕비를 협박했고, 편지를 되찾아야 했던 왕실 측은 경찰에 수사를 맡겼다. 경찰청장은 거액의 보상까지 걸린 사건이라며 장관의 집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편지를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탐정 뒤팽에게 조언을 구한다. 비밀 서랍이나 벽 속에 숨겨져 있을 거라 생각한 경찰과 달리 뒤팽은 역으로 생각했다. 오히려 편지를 대놓고 꽂아두는 편지꽂이에서 왕비의 비밀 편지를 발견했으니까. 뒤팽은 다음 날 장관의 집을 다시 방문해 미리 준비한 가짜 편지와 진짜 편지를 바꿔치기한다.

이 소설에서 왕비가 받은 편지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는다. 즉 편지에 적혀 있는 내용은 중요하지 않고, 그보다는 누가 갖고 있는지, 누가 그걸 보고 있고, 또 누가 보지 못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거다. 라캉은 이 소설 속 편지를 단순히 정보를 담은 종이가 아니라, 편지 주변의 사람들을 특정한 역할과 관계 속으로 밀어 넣는 물건으로 바라본다. 즉 사람이 편지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편지가 사람들의 위치를 결정짓는 물건이라는 거다.

이 해석을 일상적인 상황에 적용해본다면? 만약 내가 ㅇ에게 분노에 찬 편지를 썼지만 부치지 않았다고 해보자. 이 편지는 ㅇ에게 도착하지 않았지만, 편지를 쓰는 동안 나는 ㅇ을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으로, 나 자신을 ‘ㅇ에게 상처받은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다. 편지를 쓰는 행위로 이미 두 사람의 관계를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편지는 ㅇ에게 배달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미 도착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거다.

라캉이 이 문장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진심은 언젠가 상대에게 전해진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오히려 사람은 자신이 말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만, 한번 입 밖으로 나오거나 글로 적힌 말은 처음 말한 사람의 의도를 벗어나 움직인다는 거다. 그 말이 전달되고, 감춰지고, 때로는 엉뚱한 사람에게 발견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관계와 위치도 달라질 수 있다. 편지는 원래 받기로 한 사람에게 정확히 전달되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사람들 사이를 움직이며 사람들의 위치를 결정하는 순간, 편지는 이미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한 셈이다.

한번 말과 글이 된 것은 없던 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누군가의 자리를 바꾸고, 때로는 결국 그 말을 꺼낸 나 자신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