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굳-빠이 OB

실수 · 유리잔

유리잔을 깨트렸다.

덤벙대다가 그런 일이다. 방 안에서 패딩 점퍼를 입으려고 쑤욱 휘둘렀는데, 책상 위에 놓여있던 유리잔을 넘어뜨려 버렸다. 유리잔이 책상 밑으로 떨어지면서 ‘쨍그랑’ 소리와 함께 깨져버렸다.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옷을 입을걸, 왜 유리잔을 바로바로 싱크대에 두질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엄마가 아끼는 잔이라며 주었던 OB라거 유리잔이었다. 서른 넘어 처음 자취를 하면서 집에 있던 컵이나 접시들을 싸주었는데, 그중 하나였다. 본가에서는 쓰지 않고 상자에 고이 담겨있던 그 유리잔이 깨져버린 거다.

OB라거 유리잔을 우리 집에 들이고 난 이후, 어딜 가면 유리잔에 먼저 눈길이 갔다. 커피도 안 마시는 내가 프릳츠커피에 간 김에 물개가 그려진 유리잔을 살 정도였으니까. 물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진 않고 있지만 한때 욕망의 근원이었다.

독립하고 난 뒤 무언가를 깨뜨린 건 처음이었다. 본가에 있었을 때도 있었을까 싶다. 내 생활 패턴과 건강이 깨질지언정, 물건을 깨뜨린 적은 없었는데. 늙어서 그런 건 아니다. (암, 그렇고말고) 태생부터 갖고 있던 덤벙거리던 모습이 다시금 부활의 조짐을 보이는 걸까. 그래, 어쩐지 내 팔다리에 내가 모르던 멍 자국이 요즘 많이 보인다고 했다.

처리는 깔끔하게 했다. 검색해 보니 깨진 유리잔은 재활용이 안 된다고 하더라. 신문지나 뾱뾱이로 잘 감싸서 일반 쓰레기로 버리면 된다고 했다. 마침, 우리집에는 B마트에서 냉동식품이나 신선식품을 사면 보내주는 뾱뾱이 팩이 많이 있다.

조심스럽게 깨진 유리잔을 들어 뾱뾱이 팩에 담았다. 치웠다고 치웠지만 분명 유릿가루들이 남아있을 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자잘한 녀석들은 소파 먼지용 돌돌이로 마무리해 줬다.